- 최근 9경기 연속 무승(3무 6패)의 깊은 수렁에서 빠진 제주SK(승점 32점)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리그 11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김정수 감독대행 체제에서 완전히 달라진 경기력에 축구 볼 맛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
-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지휘봉을 잡은 김정수 감독대행은 급격한 변화가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빠르게 팀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SPORTALKOREA=제주] 이경헌 기자=김학범 감독의 자진 사임, 사상 초유의 4명 퇴장, 심판 판정 논란까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지만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는 제주SK FC(이하 제주SK). 강등 위기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9경기 연속 무승(3무 6패)의 깊은 수렁에서 빠진 제주SK(승점 32점)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리그 11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이렉트 강등이 되는 최하위 대구(승점 23점)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주SK 팬들은 입모아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외치고 있다. 김정수 감독대행 체제에서 완전히 달라진 경기력에 '축구 볼 맛'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지휘봉을 잡은 김정수 감독대행은 급격한 변화가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빠르게 팀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충분히 경쟁력 있는 스쿼드를 보유한 만큼 위기를 기회로 돌려세울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정수 감독대행은 전임 사령탑인 '학범슨' 김학범 감독에 못지 않은 전술가다. 김정수 감독대행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에서 한국을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는 기술연구그룹(TSG)의 일원으로 김학범 감독과 우승을 합작했다. 소통 능력도 뛰어나 기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와의 가교 역할을 통해 침체된 분위기를 빠르게 쇄신시킬 수 있는 적임자였다.

선발라인업을 살펴보면 눈에 보이는 큰 변화는 없다. 감독대행 후 첫 경기였던 9월 28일(일) 수원FC와의 홈 경기(3-4 패) 선발라인업은 김학범 감독 시절과 거의 동일했다. 송주훈, 김동준, 안태현, 이창민 등 주축 선수 4명이 퇴장으로 결장한 10월 3일(금) 전북 현대와의 홈 경기(1-1 무)에서도 유인수, 장민규, 김진호, 안찬기 등 예측 가능한 범위의 대체 카드가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경기를 풀어가는 해법은 완전히 달라졌다. 흐릿한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명확한 장점을 살리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크로스 전개와 유리 조나탄의 활용법이다. 김정수 감독대행은 4-4-2와 3-4-3 포메이션을 혼용하면서 양 측면 풀백이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상대 압박이 느슨해지면 곧바로 런닝 클로스와 얼리 크로스를 아끼지 않는다. 정운, 임창우, 김륜성, 안태현 등 제주SK가 보유한 측면 자원들은 모두 킥력이 뛰어나기 때문.
기존 장점이었던 중원 장악력에 이러한 측면의 파괴력이 더해지자 상대 수비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여기에 185cm, 88kg의 압도적인 피지컬로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리 조나탄의 포스트 플레이도 더욱 위력적으로 변했다.김정수 감독대행은 유리 조나탄이 2~3선까지 내려오기 보다는 최전방에서 상대 중앙 수비수를 묶어 놓으라고 주문했고,유리 조나탄은 공중볼 성공 횟수 리그 천제 4위(115개)로 증명된 공중볼 장악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결과로 증명하고 있다. 수원FC전에서 0-1로 뒤지던 전반 14분 임창우의 오른쪽 측면 얼리 크로스를 유리 조나탄이 왼쪽 페널티박스 안에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상대 수비가 예측하기 힘든 얼리 크로스 궤적이 주효했다. 전북전에서도 경기 막판 김정민이 오른쪽 측면에서 길게 내준 크로스를 유리 조나탄이 상대 수비수와 볼 경합을 통해 남태희에게 전달됐고, 남태희가 침착한 마무리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러한 선택은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파이널 써드 공략을 잘하는 남태희의 위력이 배가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득점 장면처럼 유리 조나탄이 상대 수비수들을 달고 뛰면 상대적으로 2선 지원에 나서는 남태희에게 슈팅 찬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남태희는 클러치 상황에서 치명적인 오른발로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다. 전북전뿐만 아니라 지난 6월 27일(금) 대전 원정에서도 경기 막판 극장골로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수원FC전에서도 전반 막판 환상적인 프리킥 득점을 선보였다. 최근 2경기에서 보여준 남태희의 클래스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북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김정수 감독대행은 경기력 변화에 대한 질문에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하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경기는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 뛰기 때문에 선수들이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쉬운 것부터 명확하게 잡아줘야 한다. 김학범 감독이 하셨던 축구에서 크게 변화를 주고 있지 않지만 더 공격적으로 임하는 부분은 분명 고무적이다. 선수들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게 공격 지역에 더 많은 선수를 동원하고, 크로스 빈도를 늘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측면 자원들이 크로스가 좋다. 유리의 제공권을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유리는 예전에는 밖으로 나와서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대 중앙수비수를 묶어놓고, 미들 지역에서는 남태희가 더 자유롭게 공략하고 있다. 자연스레 득점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상대는 더 부담이 된다. 이러한 부분이 2경기 연속 공격 작업에 있어 시너지가 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교체 카드 활용도 더욱 과감해졌다. 상대의 수비 집중력과 체력이 저하되는 후반전에 신상은과 김정민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신상은은 탄탄한 체격(185cm, 72kg)과 스피드를 활용한 1대1 돌파가 탁월한 측면 공격수다. 마무리 능력도 준수하다. 이러한 장점을 십분 활용해 지난 수원FC전에서 솔로 플레이에 이은 환상적인 감아차기로 제주SK 데뷔골을 터트렸다. 활동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정교한 킥력을 보유한 김정민은 상대 압박이 느슨해지는 후반전 종반에 투입해 상대 수비라인을 파쇄하는 역할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 전북전 남태희 극장골의 기점 크로스도 김정민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김정수 감독대행은 "주축 선수 4명이 퇴장을 당한 것은 안타깝지만 여전히 우리는 좋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교체로 투입하는 선수들은 선발 선수들과 달리 흐릿한 단점보다 뚜렷한 장점에 더욱 포커스를 두고 있다. 신상은은 짧은 출전 시간에도 강렬한 임펙트를 보여줄 수 있는 공격수다. 김정민의 킥력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상대 마킹과 압박이 느슨해지면 이들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공격 작업과 마무리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많은 팬들이 달라진 경기력에 더욱 공감하는 이유는 바로 90분 그 이상의 감동을 더하기 때문이다. 김정수 감독은 많은 비가 내렸던 전북전에서 경기내내 선수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지휘했다. 김정수 감독대행은 "저희들은(코칭스태프) 선수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많은 비가 내렸지만 선수들이 비를 맞으면 벤치에 있는 우리(코칭스태프)도 같이 비를 맞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선수단 미팅에서도 선수들에게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향해 뛰자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오늘 경기에서 증명된거 같아서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라고 앞으로의 선전을 다짐했다.
달라진 모습에 등을 돌렸던 팬들도 다시 경기장을 찾고 있다. 연이은 부진에 김학범 감독이 자진사임하고 처음으로 치렀던수원FC와의 홈 경기 관중은 5,142명이었다. 올 시즌 제주SK의 평균 관중 수치(7,210명)에 크게 밑도는 수치였다. 하지만 수원FC전부터 달라진 경기력이 다시 온/오프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전북전에서는 악천후에도 6,102명의 관중이 경기를 찾았다. 그리고 아직 승리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이런 축구를 보고 싶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라는 팬들의 외침은 강등 탈출을 꿈꾸는 제주SK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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