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수원삼성블루윙즈는 창단되었다. 수원은 K리그를 연패하고 아시안클럽챔피언십(현 AFC챔피언스리그)도 2년 연속 쟁취했다. 고형진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홍재민] 수, 원, 강, 등

골닷컴
2023-12-03 오후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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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요약
  • 1995년 수원삼성블루윙즈는 창단되었다.
  • 수원은 K리그를 연패하고 아시안클럽챔피언십(현 AFC챔피언스리그)도 2년 연속 쟁취했다.
  • 고형진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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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수원월드컵경기장]

처음 운전을 배울 때 아버지는 엔진 예열을 강조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이 콕 박혀 지금까지 습관이 이어진다. 예열 게이지가 두 칸이 될 때까지 내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예열을 완료한 자동차는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작디작은 눈발이 앞 유리창에 부딪혔다. 15년 전, 차범근 감독의 왕관 위로 떨어졌던 눈과 같은 성분일 것이다.

1995년 수원삼성블루윙즈는 창단되었다.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신생팀 수원은 한국 축구판을 뒤흔들었다. 유럽파가 없던 시절, 국가대표 선수들은 죄다 수원에서 뛰었다. 수원은 K리그를 연패하고 아시안클럽챔피언십(현 AFC챔피언스리그)도 2년 연속 쟁취했다. 수원의 푸른 팬들은 압도적 규모와 서포팅의 세련미로 K리그 응원 문화를 선도했다. 축구는 수원이었고, 수원은 축구의 리더였다.

창단 28년째인 2023시즌의 수원은 그런 영광을 잊었다. 자연스레 풍화되었는지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수원이 수놓았던 날들의 기억은 기록지에만 존재한다. 눈앞에 있는 수원은 느릴 뿐이다. 플레이의 짜임새는 헐겁고, 선수들의 역량은 초라하다. 선수단은 “예전보다 투자가 줄어서”라고 변명하지만, 살림살이가 수원보다 적은 포항의 성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고형진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장도로 단칼에 베진 듯이 빅버드는 좌우로 쪼개졌다. 오렌지색 강원 팬들은 “수원강등”이라고 외쳤다. 북측 스탠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푸른 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표 지점을 찾지 못한 채, 빅버드 허공에서 무질서하게 엉켰다.

수원 강등

프렌테트리콜로에게 2023년 12월 2일 오후 4시는 비현실 그 자체였다. 마지막까지 간절함을 보여주지 못한 구단에 화를 내야 할지, 창단 28년 만에 2부 리그로 떨어졌다는 사실에 울어야 할지, 모든 것을 리셋할 계기가 강제되는 2024년을 향해 희망을 품어야 할지, 아무도 무엇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한 팬들의 처지와 비교해 선수단의 선택지는 명확했다. “죄송하다”라는 사죄와 함께 고개만 숙이면 됐다. 수원은 남루했다.

어둑어둑한 지하 주차장 출구 앞에는 성난 팬들이 진을 쳤다. 오렌지색 원정팀 버스는 박수를 받으며 천천히 갈 길을 떠났다. 홈팀 버스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에 쫓긴 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군중이 빠진 자리에는 으깨진 담배꽁초와 침자국이 대신했다. 경찰 차량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통제를 요청하는 안내방송을 조심스레 나왔다. 오동석 단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은 팬들의 분노에 쓸려 내려갔다.

K리그 대표 인기 구단의 강등이 확정된 직후, 지인들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으로 쏟아졌다. ‘푸른피’가 흐르는 메시지는 위로를 갈구했고, 반대편 메시지는 쾌재의 동참을 요청했다. 어느 쪽 메시지든 간에 공통점이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놀라움이었다. 12월의 첫 일요일 아침, 수원 팬들은 2부에서 눈을 떠야 한다. 2부 강등이 개꿈이 아니라 당장 감내해야 할 현실임을 실감하면서.

2000년 5월 아틀레티코마드리드는 레알오비에도 원정에서 2-2로 비겨 세군다리가 강등이 확정되었다. 20일 뒤에 있던 코파델레이 결승전도 1-2 패배로 끝났다. 그보다 사흘 전, 마드리드 라이벌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렌시아를 꺾고 통산 여덟 번째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지옥에서 맞이한 2000-01시즌, 아틀레티코 팬들은 1부 시절보다 더 많은 시즌티켓을 구매했고,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아틀레티코의 지옥은 2년 만에 종료되었다.

수원은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K리그의 아틀레티코가 되어 팬심을 돌릴 수 있을까? 고개 숙이는 프런트에게 날아간 것은 분노에 찬 야유뿐이었다. 양측은 팬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의 문구와 구단 측이 준비한 ‘관제 배너’만큼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연이은 선수단 관리 실패, 번번이 돈 낭비로 드러난 외국인 영입, 실체 없는 ‘리얼블루’ 고집 등은 올 시즌 프로 지도 경험이 전무한 플레잉코치에게 강등 탈출을 맡기는 충격적 오판으로 이어졌다. 팬심을 달랠 수 있는 그 무엇도 지금 구단에는 남아있지 않다. 푸른 팬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글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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