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한국프로축구연맹(권오갑 총재) 상벌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위원회는 울산현대 소속 박용우, 정승현, 이명재, 이규성의 인종차별 SNS 건을 다뤘다. 결과는 정승현을 제외한 3인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500만 원, 구단에 제재금 3,000만 원 부과였다.

[홍재민] K리그에서 별일 아닌 잘못: 인종차별

골닷컴
2023-06-26 오전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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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요약
  • 6월 22일 한국프로축구연맹(권오갑 총재) 상벌위원회가 소집되었다.
  • 위원회는 울산현대 소속 박용우, 정승현, 이명재, 이규성의 인종차별 SNS 건을 다뤘다.
  • 결과는 정승현을 제외한 3인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500만 원, 구단에 제재금 3,000만 원 부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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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수습하기가 어렵다. 엎지른 물을 주워담기도 어렵다. 신중하게 시작해야 하고, 젖은 바닥은 마를 때까지 닦아야 한다. K리그는 그런 일에 참 서툰 것 같다.

6월 22일 한국프로축구연맹(권오갑 총재) 상벌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조남돈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7인이 전원 참석했다. 위원회는 울산현대 소속 박용우, 정승현, 이명재, 이규성의 인종차별 SNS 건을 다뤘다. 결과는 정승현을 제외한 3인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500만 원, 구단에 제재금 3,000만 원 부과였다. 위원회는 이들의 언행을 인종차별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비하, 모욕 의도는 없었다는 해석을 달았다.

기가 찼다. 운전 중인 차를 갓길에 세우고 보도자료 메일을 재확인했다. 내용은 그대로였다. 인종차별을 저지른 프로축구선수들이 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벌을 받는다. 필자는 상벌위 소집 전까지 내심 중징계를 기대했다. 2023년 인종차별 반대는 전 세계적 추세다. 문명사회에 사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과도 같다. 우리는 이런 걸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같은 유니버스 안에 있는 K리그도 그렇지 않을까? 이런 세상에. 그렇지 않았다.

중징계 기대의 근본적 이유는 이번 징계가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인종차별 관련이었기 때문이다. 첫 사례는 선례이자 절대적 참고값으로 남는다. 과거 K리그는 승부조작 및 심판 매수 건을 관대하게 넘기는 우를 범했다. 구단 프런트가 직접 개입한 구단이 승점 10점 삭감에 그쳤다. 그게 기준점이 되어 이후 심판 매수 건의 승점 삭감 폭이 9점에 걸렸다. K리그가 사회적 상식이나 팬 정서보다 법리 해석 안에서 침잠한 결과였다. 앞으로 우리는 유사한 문제에 대한 K리그의 양형 수위를 예상할 수 있다. 최대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500만 원이다. 2023년 6월 22일 K리그 상벌위가 그 일을 해냈다.

K리그는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례들은 세상이 바뀌기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다. 리오 퍼디낸드의 SNS 건 징계는 무려 12년 전 결정이었다. 그동안 성, 인종, 국적, 종교, 성취향 등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가. 똑같은 일이 요즘 벌어졌다면 징계 수위가 훨씬 높아질 공산이 크다.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 제스처를 취했던 팬은 사법 처리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필자가 아는 대한민국은 이런 문제 앞에서 자주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

K리그는 선수의 벌을 감경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끝까지 해당 선수를 지지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박용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발언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계가 이토록 선수를 아끼는데 왜 국가대표 손준호는 아직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번 사안의 피해자가 태국이라는 점도 아쉽다. 올 시즌 K리그 흥행은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하지만 시장성을 갖기엔 갈 길이 멀다. 리그가 더 성장하려면 내수 시장 활성화와 함께 동남아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 동남아 쿼터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잠재 고객인 동남아, 특히 태국 팬들이 거칠게 항의한다. 우리가 해외파 선수들의 인종차별 경험담에 분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세안 축구 시장에서 타이 리그1은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한다. K리그가 그곳 팬심에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할 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가해자가 되는 순간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방송인 조나단은 지금도 한국어 능력으로 주목받는다. 초등학생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23세 청년이 방송에서 “이 친구 영어를 잘하는군!”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상상해보라.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포용할 경험과 인종차별 관련 지식이 결핍되었다. 이번 상벌위의 “비하 또는 모욕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라는 결정문은 ‘본의 아니게’라는 말장난처럼 들린다.

K리그 상벌위의 징계에 대해서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포털사이트 뉴스에도 ‘화나요’ 숫자가 제일 많다. 이번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팬이 훨씬 많다는 소리다. 팬들은 화를 얻었다. 박용우를 비롯한 가해자 선수들은 최소한 인종차별에 관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인생 경험이 훨씬 많은 어른이 모인 K리그는 이번에 무슨 교훈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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