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필자에게 수원은 고도(古都)가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는 신도시다. 축구, 골프, 수영, 스쿼시, 헬스, 요가 등등 시설이 완비되었다. 이런 곳에서 4월 15일 열리는 K리그1 경기를 언론들은 멸망전이라고 불렀다.

[홍재민] 빅버드는 쌀쌀하고 썰렁하고 칙칙했다

골닷컴
2023-04-16 오후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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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요약
  • 그래서 필자에게 수원은 고도(古都)가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는 신도시다.
  • 축구, 골프, 수영, 스쿼시, 헬스, 요가 등등 시설이 완비되었다.
  • 이런 곳에서 4월 15일 열리는 K리그1 경기를 언론들은 멸망전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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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가는 동선에 광교가 걸친다. 그래서 필자에게 수원은 고도(古都)가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는 신도시다. 갈 때마다 고층 빌딩이 새로 들어선다. 도보 가능 거리에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어느 날 기자석에서 고개를 들었더니 멀리 스티로폼 포장재 같은 원기둥 하나가 봉긋 솟았다. 이 동네는 뭔가 계속 생긴다. 그런 느낌이다.

무엇보다 필자에게 수원의 이미지는 건강하다. 경기장 일대 자체가 방문자의 운동 의지를 부추긴다. 공간 자체가 탁 트여서 괜히 뛰고 싶다는 마음이 동한다. 축구, 골프, 수영, 스쿼시, 헬스, 요가 등등 시설이 완비되었다. 빅버드를 따라 돌면서 긴 숨을 후후 내쉬는 사람도, 개도 많다. 빅버드는 여전히 세련되고 시설도 깔끔하다. 정문 옆에는 결혼식 하객들이 모여 있어 잔칫집 분위기다. 건강한데 행복하기까지, 정말 멋진 곳이다.

이런 곳에서 4월 15일 열리는 K리그1 경기를 언론들은 ‘멸망전’이라고 불렀다. 12위와 10위의 맞대결이니 지나친 ‘어그로’는 아니었다. 양쪽 감독은 동병상련이다. 이병근 감독은 김상식 전북 감독과 함께 올 시즌 경질 레이스를 펼치는 주인공이다. 원정팀과 함께 온 남기일 감독도 예산 규모 대비 성적을 따지면 가슴을 펴긴 어려운 처지다. 두 사람 모두 고민도 많고 원망할 구석도 많겠지만, 현실은 토요일 오후의 쌀쌀한 바람처럼 차갑다.

빅버드는 썰렁했다. 유료관중이 5,190명에 그쳤다. 4만4천 석 수용 규모의 11.7%에 해당한다. FIFA월드컵을 유치했던 시설치곤 숫자가 민망하다. 기자석에 도착하니 옆자리 동료가 ‘앉기 전에 자리를 닦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물티슈로 닦으니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수원의 기자석 시설은 수준급이다. 전기 콘센트, 인터넷 연결 포트, 이렇게 널찍한 데스크를 갖춘 기자석은 유럽 현지에서도 드물다(진짜다. 믿어달라). 최고의 시설과 그 위로 쌓인 먼지, 근사한 경기장과 썰렁한 관중석, 구단 이름값과 오늘의 순위표. 정반대 요소들이 공존한다. 헷갈린다.

북측 스탠드에 걸린 걸개는 다양했다. 응원 문구들은 거꾸로 달려 있었다. 원망하는 아우성만 제대로 달려 억센 필체로 구단 프런트를 비난했다. 홈팀 서포터즈는 열심히 응원했다. 얼마 전까지 버스를 막고 응원을 보이콧했던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구단을 더 당당하게 비판할 자격을 얻으려면 우선 응원은 해야 한다는 심리일까? 목청을 높여 응원하는 서포터즈의 속마음에 화가 가득하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이상했다. 선제골이 들어갔을 때, 추격골이 터졌을 때, 파란 팬들은 누구보다 기뻐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제주가 3-2로 역전승을 거뒀다. 일주일 사이에 강원과 수원을 잡은 2연승이었다. 개막 5경기에서 2점에 그쳤던 제주는 두 팀 덕분에 승점 6점을 땄다. 강원과 수원은 제주에 막혀 올 시즌 첫 승리의 희망을 또 접어야 했다. 제주는 2연속 ‘멸망전’을 발판으로 반등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이병근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두 어깨가 축 처져 땅에 닿을 듯했다. 이병근 감독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지만, 사퇴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정확히 1년 전 오늘, 수원은 이병근 감독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시즌 개막 7경기에서 수원은 승점 7점을 기록했다. 이후 전북과 서울에 내리 패한 끝에 감독이 교체되었다. 올 시즌 수원은 첫 7경기에서 승점을 2점밖에 얻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 포항, 대구, 인천, 전북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주 슈퍼매치는 하필 원정이다. 올 시즌 포항은 뛰어난 감독과 능력 있는 선수들이 모이면 팀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분위기가 처진 수원이 서울과 포항 경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승부로 막을 수나 있을까? 쉬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수원은 실력보다 순위가 떨어진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개막 7경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스쿼드는 아니다. 제주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원은 자신감과 분위기를 잃었다. 수비 뒷공간으로 날아오는 패스 한 방에 수비가 녹아내릴 정도로 집중력도 크게 떨어진다. 밖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면, 구단은 문제의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프로구단의 문제 해결이 기자석 먼지 닦기처럼 단순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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