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체증 속 운전석에 갇히면 인생을 허비하는 기분이다. 주말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좁디좁은 운전석에서 인생을 낭비하게 생겼다. 대전과 포항의 K리그 3라운드는 정말 축복이다.

[홍재민] 공간 창출 없는 대전 축구의 허무함

골닷컴
2023-03-12 오전 11:04
473
뉴스 요약
  • 교통체증 속 운전석에 갇히면 인생을 허비하는 기분이다.
  • 주말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좁디좁은 운전석에서 인생을 낭비하게 생겼다.
  • 대전과 포항의 K리그 3라운드는 정말 축복이다.
기사 이미지

[골닷컴] 운전이 재미없다. 이렇게 된 지 꽤 된다. 교통체증 속 운전석에 갇히면 인생을 허비하는 기분이다. 운전 외에 놀릴 수 있는 게 청각밖에 없다니 말이 안 된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이 된다고 해서 기뻤다. 나중에 가격을 보고 슬펐다. 대중교통은 나를 건강하게 해준다. 그렇게 자기 암시를 건다.

금요일 저녁 나는 기로에 섰다. 토요일 대전행 SRT 티켓은 모든 시간대가 매진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의 위에서 아래까지 온통 회색빛 ‘매진’ 표시였다. 설상가상 올라오는 표도 없다. 주말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좁디좁은 운전석에서 인생을 낭비하게 생겼다. 그럴 순 없다. 앱의 ‘새로고침’을 필사적으로 눌러댔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반나절이 지나 상행 취소표가 떴다. 냉큼 주웠다. 몇 시간 지나 운 좋게 하행 티켓까지 구했다. 스마트폰 세상 만세다.

대전역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지하철을 탔다. 1,5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비싼 택시비를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얼마나 만족스럽냐면 지하철 안에서 커다란 볼륨으로 뉴스를 듣는 어르신1, 그 옆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어르신2를 웃어넘길 정도였다. 역에서 나오니 농수산물시장은 휑했다. 배추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오늘 시간을 아끼고 돈도 아끼고 건강까지 챙겼다. 대전과 포항의 K리그 3라운드는 정말 축복이다.

경기가 지속되는 90분 중에 절반 이상을 서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스르르 눈이 감겼다. 노트북에 딱히 메모할 내용도 없었다. 가벼운 아이패드나 가져올 걸 그랬다. 어쩌다 생기는 상황 정도야 허리를 굽혀 몇 글자 때려 넣으면 된다. 물론 양 팀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대전은 주세종을 잃은 상태였다. 지난 인천전에서 안와가 부러졌다. 화면으로 보니 옛날 옛적 김일 선생에게 박치기 당하던 상대들의 고통이 저랬겠다 싶었다. 대체자 임덕근은 경기 초반 헤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마사도 없었다.

포항은 지난 두 경기처럼 이번에도 수비가 흔들렸다(물론 2연승 했다). 심상민의 무심한 백패스가 초래한 위기에서 오베르단이 영웅적 방어를 펼쳤다. 3분 뒤, 하창래는 평범한 상황에서 볼을 놓쳐 위험한 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줬다. 대전의 조유민이 집요하게 송민석 주심에게 따졌고, 곁에 있던 하창래는 발끈했다. VAR 화면을 보고 온 주심은 카드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꿨다. 참고로 VAR 판독 대상은 득점 여부, 페널티킥 반칙 여부, 다이렉트 퇴장 여부, 제재 선수 확인이다.

하프타임이 지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한 명 많은 대전이 경기를 점유했다. 그리곤 아무런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다. 대전 공격수들은 빼곡한 상대 진영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기자석의 나처럼). 최적의 위치를 찾는 움직임도,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움직임도 없었다. 대전의 패스는 가만히 선 동료에게만 굴러갔다. 덕분에 포항은 쉽게 막았다. 상대 선수와 볼은 눈으로 추적할 수 있는 피사체다. 프로 선수라면 눈에 보이는 위험쯤은 대부분 막아낸다. 공간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면 수비는 쉬워진다.

하창래의 퇴장은 양쪽 밸런스를 깨트렸다. 소위 승부의 분수령이다. 결과는 거꾸로 나왔다. 포항은 수비 블록을 쌓았다. 대전은 그런 수비를 상대로 슛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 결국 퇴장은 진공청소기의 작동 버튼이었다. 모든 걸 빨아들여 경기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초강력 흡입 버튼. 포항으로서는 나쁠 것 없었다. 김기동 감독은 “오늘 승점 1점이 3점 이상 팀을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기동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회견실을 빠져 나갔다. 그러고 보니 K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었다. 본인은 무척 섭섭할 것 같다.

개막전에서 대전은 강원을 2-0으로 꺾어 승격 축포를 쐈다. 관중도 18,590명이나 들어찼다. 다음 경기에서는 인천과 박진감 넘치는 3-3 무승부를 만들었다. 좋은 일만 있었는데도 시즌 두 번째 홈경기의 관중은 개막전보다 1만 명이나 줄었다. 매 경기 값비싼 승용차를 경품으로 내걸 수 없는 노릇이다. 4월이면 한화이글스의 시즌이 시작된다. 대전으로서는 경기장 안팎에서 김새는 3라운드가 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접 운전해서 오지 않길 정말 잘했구나.

글 = 홍재민

지금 FC ONLINE의 실시간 이슈를 확인해보세요!
댓글 0
0 / 300
출석체크하고 포인트 적립! Daily Reward출석체크하고 포인트 적립! Daily Reward
© 2023 NEXON Korea Corp.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