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역 시절 북한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정대세가 베일에 싸여 있던 대표팀 생활과 옛 동료들을 향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 일본 매체 풋볼존은 14일(한국시간) 정대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북한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의 비화와당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명했다.
- 이번 인터뷰에서 정대세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대표팀 소집 당시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회상했다.

[SPORTALKOREA] 김경태 기자=현역 시절 북한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정대세가 베일에 싸여 있던 대표팀 생활과 옛 동료들을 향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일본 매체 '풋볼존'은 14일(한국시간) 정대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북한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의 비화와당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명했다.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는북한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진 스트라이커였다. A매치 통산 33경기에 출전해 15골을 터뜨렸으며,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와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무대를 누비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22년 현역 은퇴 후에는 정대세는 해설위원과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지난 8월부터는 일본 풋볼리그(JFL·4부리그) 소속 Y.S.C.C. 요코하마의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 커리어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정대세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대표팀 소집 당시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회상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활동했던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소집 일정이 있을 때마다 평양에 들어갔다"며 "하지만 선수촌 형태의 훈련장과 시내 호텔, 경기장만 오갔을 뿐 밖으로 나가 관광을 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 본토 선수들과의 교류 역시 제한적이었다. 정대세는 "다른 선수들과는 경기장 밖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대화를 해봤자 가벼운 취미 이야기 정도였고, 그들이 어떤 육성 과정을 거쳐 대표팀까지 올라왔는지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그가 대표팀에 융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같은 재일교포 출신 선배들의 존재였다. 정대세는 "당시 대표팀에는 안영학(現릿쇼대 코치) 선배와 량용기(現베갈타 센다이 클럽 코디네이터) 선배가 함께 뛰고 있어서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축구협회의 지원 덕분에 기본적인 관계성이 형성된 상태에서 합류할 수 있었던 점도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특수한 사정 탓에 당시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동료들과의 소식은끊긴 상태다.
정대세는 "그 선수들과 연락을 안 한다기보다는 연락을 취할 수단 자체가 없다"며"다만 지난 2024년 3월 도쿄에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가 열렸을 때, 해설 업무차 경기장을 찾았다가 옛 동료들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단장님이 그대로 계셨고, 함께 뛰었던 센터백 동료가 코치로 왔더라. 짧게 인사를 나눴는데 정말 반갑고 그리웠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재팬 스포츠 마케팅,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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