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리그 32라운드에서 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블루윙즈가 만났다.
 - 여전히 순위표 맨 아래였고, 승점은 22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 올 시즌 두 번째 관중수(15,070명)가 기록되었다.
 

[골닷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북측 스탠드는 검은색이었다. 원정 팬들은 검은 티셔츠 차림이었다.
K리그 32라운드에서 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블루윙즈가 만났다. 인천이 2-0으로 이겼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난 다음까지 원정팀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순위표 맨 아래였고, 승점은 22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3을 곱하면 정확히 1위 울산의 승점이 된다. 푸른 피가 흐를 것 같은 염기훈 감독대행의 오늘은 눈빛, 표정, 처지 모두 서포터즈 옷차림처럼 검은색이었다.
인천은 기뻤다. 올 시즌 두 번째 관중수(15,070명)가 기록되었다. 공식 관중수가 발표되자 스마트폰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송한 ‘200만 관중 돌파’ 문자 메시지가 착신되었다. 경기 막판 천성훈은 무실점 완승을 이끌며 환호하는 홈 서포터즈에게 달려가 안겼다. 무뚝뚝한 조성환 감독조차 기자회견을 끝내면서 “활짝 웃었다고 좀 써달라”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기록지의 주인공은 분명히 홈팀 인천이었다.
인천-수원 경기의 현장은 이날의 주인공으로 수원 원정 서포터즈를 지목할지 모른다. 경기 전부터 프렌테트리콜로는 엄청난 데시벨로 각종 구호를 쏟아냈다. 경기 전 선수 소개 방송에도 눌리지 않을 기세였다. 코앞에서 벌어진 선제 실점 장면에도 원정 서포터즈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염기훈 응원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애정이 느껴졌다. 검은 옷을 입은 푸른 함성은 비현실적으로 컸다.
지난주 수원은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며 행운을 빌었다(굿럭!). 그 자리에는 다름 아닌 플레잉코치인 염기훈이 앉았다. 레전드의 조기 등판은 수원 지지자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분노 그 자체였다. 가뜩이나 불만이 쌓였던 팬들은 마지막 울화를 쥐어짜 구단을 맹비난했다. 김병수 전 감독은 훈련 방식에서 선수단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즌 두 번째 감독 경질은 팬들 눈에 헛발질처럼 보일 뿐이다.
실질적 주인공이 경기장 밖에 있었던 탓에 이날 경기의 내용과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원의 허술한 수비는 낯설지 않고, 상대 진영에서 바둥바둥대는 뮬리치의 고군분투도 달라지지 않았다. 인천 홈경기장에서 존재했던 90분, 그 안을 채운 모든 플레이는 수원의 암울한 2023시즌에 티끌만 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경기 전, 원정 팬들은 구단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내보였다. 설사 이날 이겼다고 한들 그런 문구들이 없어질 리가 없었다.
교체로 들어간 인천의 천성훈은 83분 쐐기골을 터트렸다. 경기 내내 유지되었던 수원 팬들의 목청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들의 연료통은 리그 5연패의 엄습에 의해 바닥을 드러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수원 팬들의 말문은 막혔고, 인천 홈 서포터즈는 그런 틈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강등’이라는 두 글자를 포함한 각종 구호가 반대편 수원 팬들의 텅 빈 가슴에 마구 꽂혔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는 염기훈 감독대행이 들어왔다. 지난 경기까지 그는 공동취재구역에서 봤던 현역 선수였다. 감독석에 앉아 취재진의 물음에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염기훈 감독대행은 “내가 생각했던 데뷔전과 다를 순 있지만, 시간을 갖고 준비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 선수들에겐 고개 숙이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염 감독대행은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면서 태연한 척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그게 역설적으로 지금 본인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일요일 하루, 수원은 대전이 강원을 잡아주길 기도할 것이다. 그게 추석 연휴에 수원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다. 사실 위안을 받는다고 해도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수원의 선수와 팬 들은 상대편에서 날아오는 ‘강등’ 구호 공세에 견뎌야 한다. 영화 <영웅>에서 주인공(이연걸)에게 수천 발의 화살이 날아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그 화살들도 오늘 수원 팬들이 입었던 옷처럼 검은색이었다.
글, 그림 = 홍재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