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 옷을 입은 이들이 가진 딱 하나 소망은 수원삼성이 강등을 피하는 것이었다.
- 강원이 수원을 상대로 이기거나 비겨 10위였던 순위가 12위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 강등과 플레이오프의 운명이 결정될 시즌 최종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리그 최하위 팀 다운 경기 운영은 아니었다.

[골닷컴, 수원] 요 며칠 강추위에 비해선 견딜만했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많은 팬들이 모였다. 파란 옷을 입은 이들이 가진 딱 하나 소망은 수원삼성이 강등을 피하는 것이었다. 24,932명의 총 관중 중 약 3천여명을 차지한 강원FC 원정 팬들의 소망도 하나였다. 강원이 수원을 상대로 이기거나 비겨 10위였던 순위가 12위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누적 경고 징계로 빠진 강원 윤정환 감독을 대신해 경기 전 인터뷰에 나섰던 정경호 코치는 수원이 수비를 우선하고 역습을 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정말 수원은 수비적으로 나왔다. 강원은 주도권을 잡은 상태에서 경기 운영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고, 경기 흐름은 강원의 예상대로 이어졌다.
수원은 이상하리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경기 운영을 했다. 강등과 플레이오프의 운명이 결정될 시즌 최종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리그 최하위 팀 다운 경기 운영은 아니었다. 전반 34분 강원 유인수가 골대를 맞히긴 했지만 수원 입장에선 실점 없이 마무리된 전반전이 마치 절반의 성공인 것처럼 보였다.
후반 들어 수원은 김주찬과 김보경을 투입했고 뮬리치도 넣으며 공격을 강화했다. 하지만 지난주 슈퍼매치에서 FC서울을 공략했던 효율적인 역습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강원이 시간이 갈수록 팀으로서 단단해진 이유도 있겠지만, 수원 선수들의 공격 패턴은 단조로웠고 그 속도도 빠르지 못했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로선 흐르는 시간이 야속할 뿐이었다. 강원 허리진과 수비진은 수원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밀어내며 유효 슈팅은 3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후반 28분 수원으로선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 나왔다.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페널티 박스 안에 있던 뮬리치가 수비 방해 없이 발리 슈팅했지만 골대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의 히어로 오현규의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 이적료를 사용해 영입한 뮬리치의 슈팅이 너무도 허무하게 뜨고 만 것이다. ‘그 자리에 오현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강원도 득점 찬스를 살리진 못했다. 이날 9개의 슈팅 중 8개가 유효 슈팅이었을 정도로 강원 공격진의 집중력은 높았지만 결실은 맺진 못했다. 윤일록과 가브리엘의 찬스가 득점에 가까웠지만 살리지 못하며 마지막까지 긴장감 흐르는 경기를 이어가야만 했다.
추가시간 5분이 모두 지나갔고 고형진 주심의 휘슬이 경기 종료를 알렸다. 그 순간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정적에 빠졌고, 이윽고 원정석에서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또 벤치에 앉지 못하고 미디어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윤정환 감독도 구단 직원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플레이오프행 확정에 기쁨을 나타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염기훈 감독대행은 여러 질문에 어렵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2010년에 처음 수원에 왔을 때와 지금은 스쿼드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때는 워낙 이름 있는 선수들도 있었고 구단 예산도 달랐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악한 게 사실이다. 지금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좀 더 이름 있고 좋은 선수들이 팀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라며 가장 큰 강등 이유를 꼽았다. 또 “투자가 있어야 팀이 단단해지고, 기존 선수들과 새 선수들이 더 경쟁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라고 본다”라며 구단을 향한 직언을 남겼다.
K리그 4회 우승의 수원의 강등은 다른 팀에도 충격이긴 마찬가지였다. 선수와 코치로 K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강원 정경호 코치는 “수원의 강등을 상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작년에 플레이오프 통해 수원이 살아남았는데, 그것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에서 수원이 리딩클럽으로서 자리를 잡을 거라 생각했지만 올해 역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K리그 흥행 측면에서 안타깝다. 마지막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응원이나 꽉 찬 분위기가 나왔는데 중요한 팀, 리딩 클럽이 떨어진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2008년 12월 7일 수원은 홈에서 마지막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최대 라이벌 FC서울을 누르고 하얀 눈발 속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장면은 지금도 수원 팬들의 가슴 한 켠에 감동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15년 뒤 수원은 같은 장소에서 창단 이래 첫 강등이라는 몰락의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글 = 김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