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방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했던 한국 축구계의 간절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결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임 초기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팀을 체질부터 개선했으며, 2002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4강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다. 그때를 회상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의 첫 만남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히딩크 감독, 깜짝 고백! "韓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아냐"..."당시 별로 열정 없었다" 2002 월드컵 대한민국 사령탑으로 마음 돌린 배경은?

스포탈코리아
2026-07-05 오후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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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요약
  • 대한민국이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방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했던 한국 축구계의 간절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결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 부임 초기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팀을 체질부터 개선했으며, 2002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4강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다.
  • 그때를 회상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의 첫 만남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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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ALKOREA] 김경태 기자= 대한민국이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방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했던 한국 축구계의 간절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결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국 매체 '포포투'는 4일(한국시간)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과정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령탑으로 평가받는다. 부임 초기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팀을 체질부터 개선했으며, 2002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4강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히딩크 감독은 어떻게 한국 대표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을 지휘했던 히딩크 감독은 조별리그 E조에서 한국을 상대했다. 그때를 회상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의 첫 만남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경기 전날, 우리는 스타드 벨로드롬 피치에서 1시간 동안 훈련할 수 있도록 배정받았고, 그 다음이 한국의 훈련 차례였다. 우리 팀 선수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훈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조금만 더 하게 두자'라고 생각했다. 한국 선수들은 터치라인에 가지런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할당된 훈련 시간을 15분이나 넘겼을 때 FIFA관계자가 다가왔다. 나는 '5분만 더 주자'라고 말했다. 그 5분은 10분이 되고, 다시 15분이 됐다. 일반적이라면 상대 팀이 경기장으로 난입해 항의했겠지만, 한국의 팀 매니저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그들의 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1998 월드컵에서 두 팀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네덜란드는 한국을 5-0으로 대파하며 조 1위(1승 2무)로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이후 유고슬라비아(2-1), 아르헨티나(2-1)를 연달아 꺾으며 최종 4강에 올랐다. 반면 한국은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패하고 마지막 남은 벨기에전에서도 1-1 무승부를 거두며 최종 성적 1무 2패,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스쳐 지나갈 뻔했던 짧은 한국과의 인연은극적으로 다시 이어졌다. 히딩크 감독은 "그로부터 1년이 훌쩍 넘은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마르세유에서 만났던 1998년 팀 매니저 중 한 명인 가삼현이다. 지금 당신 집 맞은편 암스테르담의 암스텔 호텔에 머물고 있다. 만날 수 있겠는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속으로 '내 집 주소와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과 관련해 만나고 싶다고 설명했다.2000년 11월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지 호기심이 생겨 호텔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 안방에서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는압박감을 안고 있었다.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경기운영본부장을 역임했던 가삼현과의 첫 미팅을 떠올린 히딩크 감독은 "그는 '우리는 16강에 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체면을 크게 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으로 '16강이라고? 지금 FIFA 랭킹이 70위쯤 되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이전에도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1996과 1998 월드컵을 경험한 터라, 월드컵 무대에 다시 나선다는 생각 자체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한국의 제안에 히딩크 감독은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았다. 그는 체질 개선을 위한 파격적인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국가대표팀을 마치 클럽팀처럼 훈련하고 관리하기 위해 1년에서 1년 6개월 동안 합숙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소속팀 차출 허용을 요구했고, 두 번째로 선수단과 스태프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 강국들과 친선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막대한 예산을 마련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조건을 내세운 이유에 대해 히딩크 감독은 "한국은 주로 상대적 약팀들과 평가전을 치렀다. 그런 경기에서 이기면 사람들은 '경기력이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월드컵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대를 만난다. 선수들은 세계를 누비며 다른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야 했다. 때로는 호되게 당할 수도 있겠지만, 안락한 환경에서 벗어나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선수단 개편을 지적하며 "당시 한국은 34세 이상 고참 선수들에게 상당히 경직된 채로 의존하고 있었다. 팀 내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초강수를 둔 히딩크 감독은 "정말 한국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약 열흘 뒤 다시 미팅을 요청하는 전화가 울렸다. 다시 호텔로 향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놀라운 결단력을 떠올리며 "내가 그곳으로 가자 그는 '첫째, 국가대표 선수들은 언제든 상시 소집할 수 있다. 둘째,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예산이 편성됐다. 셋째, 여기 감독 계약서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놀랐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그의 결단력과 열망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즉석에서 서명하진 않았지만, 이내 이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향했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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