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축구의 가교 노릇한노정윤이 근황을 공개했다.
- 고려대 졸업 후1992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계약하며 최초의 한국인 J리거가 됐다.
-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투쟁심을 앞세워 단숨에 히로시마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SPORTALKOREA] 김경태 기자= 한일 축구의 가교 노릇한노정윤이 근황을 공개했다.
일본 매체 '넘버웹'은 27일(한국시간)노정윤과의인터뷰를 공개했다. 여기엔1990년대 한일 축구계를 호령했던 그가 돌연 자취를 감춘 이유가 밝혀졌다.

노정윤은 '한국인 1호 J리거'다. 고려대 졸업 후1992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계약하며 최초의 한국인 J리거가 됐다. 당시한국최고 유망주가 신생 리그인 J리그로 향하자 일각에선 "매국노"라는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정윤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투쟁심을 앞세워 단숨에 히로시마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1994년 전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95년에는 13골로 팀 내 득점 1위에 오르며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일본 무대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1994 국제축구연맹(FIFA) 미국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했다. 비록 대표팀은 2무 1패를 기록하며 조 3위로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나, '전통강호' 스페인(2-2 무), 독일(2-3 패)을 상대로 팽팽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특히 노정윤은 스페인전과 볼리비아전에 연속 출전해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후 1998년 네덜란드의 NAC 브레다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까지 경험한 그는 이듬해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하며 일본으로 복귀.첫해 11도움 등을 기록하며제2의 전성기를 누렸고,2001년에는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도 뛰었다. 이러한노정윤은 J1리그 통산 215경기 출전 43골이라는금자탑을 세웠다.
커리어 말미에는 K리그 무대도 밟았다. 과거 드래프트 거부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는 규정 탓에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해당 규정이 풀린 2003년 부산 아이콘스(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고 마침내 고국 팬들 앞에 섰다. 2004년 FA컵(現 코리아컵) 우승을 이끈 뒤 2005년 울산 현대로 적을 옮겼고, 2006년을 끝으로 35세의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가 지도자 과정을 준비했고,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게임 회사 고문으로 취임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노정윤은 공식 석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그러던 지난달, 그가 J3리그 FC 오사카의 아시아 전략 홍보대사로 부임했다는 반가운 근황이 전해졌다. 이어 이번 '넘버웹'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공백기의 진실을 직접 털어놓았다.
지난 2019년 1월, 컨디션에 이상을 느낀 노정윤은 링거를 맞으러 병원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레쓰러졌다. 병명은뇌경색. 당시를 회상한 그는"머리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걷지도 못해서 매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오른쪽 반신에는 마비가 남았다. 정말 죽을 뻔했다"고 토로했다.
지독하리만치 외로운 사투가 시작됐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아내와 세 자녀가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지만, 노정윤은 아이들의 학업과 아내의 생활을 걱정해 이들을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홀로 남은 그는 하루 2번이던 재활 치료를 3번으로 늘려 한 달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웠으나, 성한 왼손으로 난간을 부여잡고 병원 지하에서 6층까지 하루 7번씩 계단을 오르내렸다. 노정윤은 "병원 사람들로부터 '정신이 나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도 재활 운동만 해대니까 그랬다"고 얘기했다.

고립을 자처한 노정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병간호를 돕는 여동생의 손길조차 최소한으로 줄였고, 축구계 지인들의 병문안은 일절 거절했다. 그는 "모리야스 하지메감독(히로시마 시절 인연)과 홍명보선배가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지만 '안 와도 된다'고 모두 거절했다. 재활 중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투병 사실 자체를 소수에게만 알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사를 넘나든 11개월의 입원 끝에 2019년 12월 마침내 퇴원했다. 원래 반년 정도 더 입원해야 했지만 병원 생활이 싫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재활은 멈추지 않았다. 걷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그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을 매일같이 홀로 걸으며 몸을 만들었다.
가족들에게도진실을 숨겼다. 고령의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 "계속 외국에 나가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투병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진 건 부친이 세상을 떠난 2023년 3월 장례식장에서였다. 절뚝이며 장례식장에 나타난 아들의 낯선 모습을 본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노정윤은 "언론을 통해 투병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치열한 사투 끝에 노정윤은 마침내 다시 일어섰다. 비록 우측 반신에 후유증이 남아 과거 날쌘돌이의 모습으로그라운드를 누빌 수는 없지만, 불굴의 의지로 병마를 딛고 FC 오사카의 홍보대사로 축구계에 복귀했다. 한일 축구의 편견을 거침없이 깨부수던 '선구자'가 기나긴 시련을 넘어 제2의 축구 인생을 향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넘버웹, J리그, 게티이미지코리아, FC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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